Please choose Language or Country
or

구스타프 클림트 - 작품세계

구스타프 클림트는 19세기 말, 모더니즘 태동하던 비엔나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화가이자 논쟁의 중심에 선 인물이었습니다. 

클림트의 초기 작품

구스타프 클림트는 미술학교를 졸업한 이후, 링슈트라세(Ringstrasse) 개발기에 장식 화가로서 작품활동을 시작합니다. 남동생 에른스트 클림트(Ernst Klimt)와 친구 프란츠 마치(Franz Matsch)와 함께 미술가 그룹을 결성하고, 그륀더차이트(Gründerzeit) 양식의 기념비적인 건축물에 예술혼을 불어넣는 작업을 했습니다. 초기에는 부르크 극장이나 빈 미술사 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계단에 그림을 그려 넣곤 했습니다. 클림트는 사람들의 인정과 경제적인 안정을 동시에 얻었으나 여전히 고유의 형식 언어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그리하여 34세가 될 무렵, 빈 분리파를 창설하여 예술을 개혁하고 현대 예술의 국제적인 경향에 발맞추고자 합니다.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Joseph Maria Olbrich)가 설계한 분리파 건물은 곧 수많은 스캔들을 낳는 획기적인 전시회의 요람이 됩니다. 반대파는 클림트의 빈 대학 천장화 대해 이렇게 비난했습니다.
“우리는 나체나 자유로운 화풍에 맞서는 것이 아니다. 단지 추한 예술에 맞설 뿐이다.” 그러나 1900년, 파리 만국 람회에서 클림트는 빈 대학 천장화 중 작품 <철학>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유럽 전역에서 명성을 떨칩니다.
 

성공의 절정

1902년, 베토벤에 헌정하는 의미로 개최된 제 14회 분리주의 전시회에서 클림트는 예술가로서 정점을 이룹니다. 클림트는 여기에서 기념비적인 작품 <베토벤 프리츠(Beethoven Frieze)>를 통해 ‘종합 예술(Gesamtkunstwerk)’의 꿈을 이룹니다. 이 작품은 현재에도 바로 그 자리에 걸려 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클림트는 빈 공방(Wiener Werkstätte)의 창설자인 요제프 호프만(Josef Hoffmann)과 협업하여 브뤼셀에 위치한 스토클레 저택(Stoclet House)을 설계합니다. 이 저택은 단연 유겐트양식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종합 예술’의 본보기라 할 수 있습니다.

두드러지는 장식성과 금빛 사용의 증가 등을 특징으로 하는  <베토벤 프리츠>는 클림트의 ‘황금 시기(Golden Phase)’의 개막을 알렸으며, 이는 <키스(the kiss, 1907/1908)>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이 시기의 작품들은 강력한 상징과 정교한 장식을 이용하여 여성적 관능미에 찬사를 보냅니다. ‘황금 시기’ 후기에는 색채를 강조하는 장식-표현주의 양식으로 회귀합니다.
 

초상화와 드로잉

구스타프 클림트는 평생 상류층 여성들의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지난 몇 년간,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은 가장 비싼 미술작품에 속했습니다. 초상화뿐 아니라 드로잉 역시 주목할 만 합니다. 클림트가 남긴 작품 수는 약 250개, 드로잉은 3천여 점 입니다. 그 방대한 양뿐 아니라 역사상 손꼽히는 드로잉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우수하다는 점 역시 그 의의를 간과할 수 없게 합니다.
 

클림트 전시회

클림트의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벨베데레 궁 오스트리아 미술관(Austrian Gallery Belvedere)레오폴드박물관(Leopold Museum)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빈 미술관에서도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베토벤 프리츠(Beethoven Frieze)>는 최초로 발표된 빈 분리파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미지 저작권

www.austria.info 및 www.austriatourism.com의 주 목적은 오스트리아 여행지 소개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