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제국의 장군 오이겐 공(Prinz Eugen)은 비엔나 문화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영원한 유산을 남긴 인물입니다. 2023년, 비엔나는 오이겐 공이 남긴 걸작, 벨베데레 궁전의 300주년을 기념하여 일련의 전시와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오에겐 공과 추문
오이겐 공은 1663년 10월 18일 이탈리아 사보이아 가문이라는 명문 귀족 아들로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으나, 방계에 무일푼이었습니다. 게다가 구부정한 어깨에 기괴하게 휜 코 때문에 외모가 수려하지 못했고 성적 취향으로 루머가 끊이지 않던 인물이었습니다.
오이겐 공은 군인으로서 위대한 업적을 이루겠다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150cm 남짓한 작은 키에, 그의 모친이 추문을 일으키고 투옥되었다는 이유로 프랑스 군에는 복무를 거부당합니다. 20살 무렵 오이겐 공은 프랑스를 벗어나기로 결심하고 여장을 합니다.
영웅으로 비상하다
오이겐 공이 비엔나에 도착했을 때 오스트리아의 레오폴트 1세 황제는 병력 증원에 열을 올리고 있던 터라 두 팔 벌려 오이겐 공을 환영했습니다. 이에 오이겐 공은 헌신과 충성으로 보답하여 고속 진급합니다. 그리고 군대를 이끌어 수십년간 서유럽을 위협하던 오스만 군에게 승리를 거두며 전 기독교 세계에 위명을 휘날립니다. 이후 3대에 걸쳐 합스부르크 황제를 모시며, 오스트리아 군의 독보적인 군사 영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오이겐 공은 퀴어?
오이겐 공의 사생활은 미스터리로 남겨져 있습니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자식도 두지 않았기에, 당대 사람들은 그를 “비너스 없는 마르스”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의 성적 지향과 관련한 루머는 사라지지 않았으나 오이겐 공의 생애를 살펴보면 퀴어적 성향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이겐 공은 인습을 거부했고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도 비엔나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다소 화려한 옷차림에 남자들도 가발을 쓰고 화장을 하는 파리 스타일 패션 때문에 진중에서 남성들 사이에 애정행각이 벌어진다는 소문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습니다. 또한 가문을 이끄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여성의 옷차림을 하는 것도 당시에는 흔한 이야기였지만 비엔나에서는 상당히 괴이한 행동으로 여겨졌습니다. 오늘날 비엔나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오이겐 공 역시 게이였음을 주장하며 비엔나 게이 투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여기고 있습니다.
오이겐 공의 화려한 취미
오이겐 공은 거두는 성공과 부가 커질수록 이를 공공연하게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거창한 방식으로 점점 더 권력을 과시해 갔습니다.
생애를 통틀어 오이겐 공이 세운 웅장한 궁전은 세 곳이나 됩니다. 비엔나 중심부에 상궁과 하궁으로 이루어진 벨베데레 궁전을 세워 여름 궁전으로 삼았고, 그 가까이에 겨울궁전을, 비엔나에서 동쪽으로 50분가량 떨어진 지역에 사냥 저택인 호프궁(Schloss Hof)을 세웠습니다. 모두 비엔나 바로크 건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건축의 걸작으로 꼽힙니다. 이 궁전들을 대표하는 방들을 장식하는 데 태피스트리와 패브릭, 샹들리에, 거울, 그로테스크풍의 프레스코화 등을 동원했으며, 그 비용을 따지면 건물을 짓는 데 든 비용을 훨씬 웃돈다고 합니다. 또한 정원을 희귀 식물과 트릭 분수로 꾸미고 외래 동물이 가득한 동물원까지 갖춰 궁전의 매력을 배가시켰습니다.
오이겐 공의 예술을 향한 열정
오이겐 공은 예술과 철학, 과학에 대단한 열정을 보인 인물입니다. 50년 이상 장군이자 정치가, 이후에는 외교관으로 정력적으로 활동하면서 회화는 물론 동판 조각, 갖가지 오브제, 세계 각지에서 들여온 이국적인 패브릭 등으로 독보적인 컬렉션을 완성했습니다. 또한 당대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도서관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오이겐 공의 특별한 친구
72년 인생을 통틀어 오이겐 공과 가장 가까운 친구는 그가 특별히 아꼈던 ‘사자’로 보입니다. 오이겐 공은 평소 사자가 상징하는 권력과 힘을 찬미했고 건물입구 장식물이나 문장(紋章)에도 사자를 집어넣을 정도였습니다. 그 관계가 얼마나 특별했을지 짐작이 가지요? 일설에 따르면, 오이겐공이 죽음에 이르던 그 시각, 사자는 마치 친한 친구가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을 알기라도 하는 양 격렬하게 울부짖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종을 초월한 깊은 유대가 여실히 느껴지는 일화입니다.
그 괴상한 성벽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 때문에), 오이겐 공이 비엔나의 문화 유산에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합니다. 오이겐 공이 세상을 떠나자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벨베데레 궁에 새로운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바로 황실의 예술품 컬렉션을 선보이는 갤러리로 탈바꿈시킨 것이죠. 일반 대중에 황실의 컬렉션을 공개하는 세계 최초의 박물관이 탄생한 순간입니다.
3세기가 지난 현재, 비엔나의 벨베데레 궁전은 구스타프 클림트의 대표 걸작 <키스(Der Kuss)>를 비롯해 세계적인 명성의 컬렉션을 보유한 예술의 중심지이자 오이겐 공의 비전을 증거하는 유산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오이겐 공의 유산을 품고 있는 비엔나의 명소들을 찾아가 봅시다!
오이겐 공이 살던 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볼까요? 오이겐 공은 여름이면 벨베데레 하궁에 주로 머물렀고, 상궁에서는 화려한 무도회와 연회를 열었습니다.
벨베데레 궁전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물론, 당시 혁신적이었던 웅장한 계단과 마블홀(Marmorsaal)도 감상해 보세요. 아이코닉한 프랑스 정원과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된 비엔나 역사지구가 눈앞에 펼쳐지는 전망도 놓치지 마세요.
비엔나의 중심을 향해 뻗어있는 오이겐 공 거리를 따라 걸어 봅시다. 벨베데레 궁전을 지나 슈바르첸베르크 광장 쪽으로 가다가 커다란 순환도로, 링 보울레바르트(Ring Boulevard)를 건너 1구로 들어갑니다.
잠시 걷다 보면, 오이겐 공의 겨울궁전(Winterpalais)을 만날 수 있습니다. 겨울궁전은 시티 팰리스(Stadtpalais)라고도 불리며 히멜포르트가세 8번지(Himmelpfortgasse 8)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은 오이겐 공이 겨울을 지내던 하이 바로크(High Baroque) 양식 궁전입니다. 현재 이 건물은 오스트리아 재무부 청사로 사용 중이며, 일반 출입은 불허합니다. 하지만 바로크식 파사드와 호화로운 출입문이 비엔나 구시가지의 구불거리는 골목과 멋지게 어우러져, 역사 속에 들어온 듯한 즐거운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일단 1구에 들어서면 슈테판 대성당 찾기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어디에서든 보이는 성당의 첨탑을 향해 걸어가면 되니까요! 비엔나를 상징하는 이 성당에서수많은 합스부르크 가문 인사들과 비엔나 추기경은 물론 오이겐 공까지도 영면을 청하고 있습니다. 오이겐 공의 무덤은 청동 조각상으로 장식된 대리석 오벨리스크로 그가 승리를 거둔 가장 대표적인 전투가 돋을새김 되어 있습니다. 이 묘소는 성당의 웅장한 신도석으로 들어가면 바로 왼편에 위치한 오이겐 공 예배실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슈테판 대성당에서 10분 거리에 자리한 호프부르크 신왕궁 앞에는 오이겐 공의 청동 기마상이 우뚝 서서 영웅광장(Heldenplatz)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는 황제 프란츠-요제프 1세가 오이겐 공의 탁월한 군사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1865년, 오이겐 공의 203번째 탄생일에 공개한 동상입니다. 동상의 대좌에는 오이겐공의 대표적인 전투와 군사 영웅으로서의 업적과 영향이 돋을새김 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