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터 공원
여행 작가 안시내가 찾아가는 <비포 선라이즈>

추억과 미래와 낭만의 여행.

영화 <비포 선라이즈>의 제시와 셀린이 삶에 대해 깊게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 있다. 조용한 카페도, 아무도 없는 미술관의 테라스도 아닌, 놀이동산에서다. 즐거운 웃음소리를 뒤로 하고 그들이 나눈 대화는 사뭇 진지해서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아있다. 제시는 셀린에게 말한다. 자신의 삶이 초대받지 않은 잔치처럼 느껴진다고. 이 세상이 내가 있어서는 안 되는 곳처럼 느껴졌다고. 셀린 역시 사랑에 관한 자신의 철학적 태도를 이곳 에서말한다. 만난지단하루도안된이들이나누기에는무거운얘기다.

이 장면이 인상 깊게 느껴졌던 건, 사랑에서 설렘과 즐거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상처와 그것이 만들어낸 현재의 ‘나’를 상대와 공유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단 하루뿐인 만남이지만 그들은 서로의 깊은 곳을 공유했다. 화려하고 즐거운 프라터 공원에서 보여준 심도 있는 대화야말로 먼 훗날 사랑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프라터 공원(Wiener Prater)은 황실 사냥터로 사용되던 공간이 1766년부터 비엔나 시민들에게 개방된 역사 깊은 공원이다. 넓은 부지의 북서쪽 한 구석에는 프라터 놀이공원(Der Wurstelprater)이 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놀이공원 중 하나라고도 불린다. 시민들뿐만 아니라 여행자들도 이곳을 방문한다. 영화 속 해질 무렵을 배경으로 제시와 셀린이 입술을 맞춘 공간 대관람차는 비엔나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프라터 공원으로 향하는 트램 안은 즐거운 기운으로 가득 차있다. 유난히 가족 단위가 많았는데,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두가 신날 수 있는 공간이 프라터 공원이기 때문이리라. 나처럼 겁이 많아 놀이기구를 잘 타지 못하는 사람도 이곳에서는 문제없다. 입장료가 없어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올 수 있는데다, 겨울철이면 비엔나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예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기 때문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공간. 들어서자 마자 따뜻한 글뤼바인 한잔에 몸을 녹이고, 작은 무대에서의 공연과 그 앞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어두운 하늘과 대비되는 반짝이는 조명들이 사람들의 눈에 보석처럼 걸려있다.

용기를 내어, 기구 하나에 줄을 섰다. 6유로. 추억 여행을 하기에 부담 없는 가격이다. 출발 전의 기구에 앉아 놀랠 마음을 다스리자 오래 전의 추억들이 떠오른다. 가족과 함께 갔던 6살의 첫 놀이공원, 수학여행으로 떠났던 17살의 놀이공원, 연인과의 첫 놀이공원 데이트, 그리고 사랑하는 친구와 떠나온 지금까지. 내 삶의 조각들이 모두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다. 기구가 출발하고, 익숙한 공포가 뒤따른다. 빠른 속도와 함께 심장이 툭하고 떨어지는 느낌. 내가 탄 롤러코스터는 마치 시간 여행을 하듯 나를 과거로 불렀다가, 현재로 데려온다. 아마 이곳에 아이를 데려온 어른들 역시 과거의 어느 날을 추억하며 아이들을 데려왔을 것이다. 모두의 추억이 서려 있을 만큼 오래 지켜진 곳에 감사했다.

프라터 공원은 단순한 놀이공원이 아니다. 이곳은 시간을 거슬러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현재의 행복을 만끽하며, 미래를 꿈꾸게 만드는 특별한 공간이다. 셀린과 제시가 그랬던 것처럼. 비엔나를 찾는 누구라도 이곳에서 사랑과 삶, 그리고 시간이 선사하는 선물을 느껴보길 바란다.

프라터 놀이공원 (Wurstelprater)

안시내의 촬영지 탐방

<비포 선라이즈>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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