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코드숍 ALT & NEU
여행 작가 안시내가 찾아가는 <비포 선라이즈>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 대사 하나 없이 마음을 울린 장면이 있다. 영화의 초반부에나온 장면이다.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줄리 델피)은 트램을 타고 가다 내려 한 레코드샵에 들어간다. 이미 앨범을 고르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셀린은 한 앨범을 골라낸다. ‘Kath Bloom’의 앨범이다. 들어보자는 제시의 권유에 둘은 감상실로 향한다. 귀를 가득 채우는 음악이 흐르자 동시에 그들은 금세 말이 없어진다.
가사는 마치 시 같다. 바람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마치 그들의 사랑을 축복하듯이.
아름다운 가사를 마주하며, 둘은 서로를 번갈아 쳐다본다. 서로가 서로를 훔쳐보는사이에 노래는 계속해서 울려 퍼진다. 가사처럼 사랑은 바람이 불 듯 그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비포 선라이즈’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단 하나의 음악이 바로 이 장면에 나온 Kath bloom의 ‘Come here’라는 곡이다. 영화가 그리울 때 나는 때때로이 노래를 찾아듣고는 했다.
이곳이 여전할까 하는 마음을 가진 채 구시가지에서 약간 벗어난 레코드샵 ‘ ALT&NEU(알트 운트 노이)’로 향했다. ‘OLD&NEW’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라는 뜻이다. 가게의 이름처럼 오래된 음반을 파는 곳이지만 비엔나의 젊은 세대가 많이 찾는 지역 ‘마리아힐프(Mariahilf)’에 위치해 있다. 거리는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빈티지 샵부터 작은 소품을 파는 귀여운 가게, 레코드샵 맞은 편으로 펼쳐지는 건물의 색도 다채롭다. 계속해서 사진기를 들게 된다. 레코드 샵도 많지만, 영화에 나온 유난히 익숙한 간판은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가게 문을 열자 오래된 책에서 나는 것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 아마 주인을 찾지 못해 오랜 기간 이곳에 머물렀을 LP판에서 나는 것이리라 짐작된다. 과거로 여행을 하듯,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 속의 셀린과 제시를 흉내 내는 여행자들과 양손 가득 든 LP판을 계산하려는 젊은 청년, 심각한 표정으로 앨범을 고르는 할아버지. 영화 속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가게 곳곳에 붙은 비포 선라이즈 포스터는 단숨에 이곳을 영화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영화 속 모습과 똑같은 구조로 남아있는 이곳에서 오래된 LP들을 뒤적인다.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곳이라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다. 5유로부터 50유로까지 전 세계의 다양한 음반들로 채워져 있다. 가게 문 앞에는 1유로짜리 LP들도 잔뜩 있다. 저렴하다고 해서 아무 거나 있는 건 아니다. 오스트리아 전통 음악부터 클래식, 크리스마스 캐럴까지. 가난한배낭여행자도 1유로에 낭만을 살 수 있도록 주인 부부가 마음을 쓰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저렴한 LP 두 장을 골랐더니 이곳에 오면 꼭 구입해야한다는 에코백을 건네준다.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다.
베토벤과 슈베르트, 브람스에 요한 슈트라우스까지. 음악의 도시는 이름에 걸맞게 비엔나에는 위대한 음악가들이 잠들어 있다. 이 도시를 걷다 보면 그들의 흔적과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클래식 선율, 오래된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 레코드샵의 먼지 쌓인 LP들 속에서 우리는 과거를 만난다.
길을 걷다 멈추면 어디에서든 음악이 들리는 이곳 비엔나. 이곳에서만큼은 이어폰을 끼지 않는 이유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선율이 비엔나를 추억하게 만들기를 바라며, 커다란 LP판이 담긴 가방을 메고 다시 거리로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