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공원
여행 작가 안시내가 찾아가는 <비포 선라이즈>
오랜 기간 여행을 다니다보니 취향이 생겼다. 도시의 랜드마크보다 내겐 더 중요한 곳. 시장과 공원이다. 그곳에는 진짜 삶이 녹아있다. 과일을 파는 노점상의 얼굴, 꽃 집에서 꽃을 고르는 이들의 잔잔한 미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호숫가를 산책하는 노인. 나는 그곳에서 단순한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과 일상을 공유하는 여행자가 된 다. 여행 중 하루 정도는 아무런 목적 없이 숙소를 나와 그들의 일상을 여행한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가 결말로 향해 갈 때쯤, 그들은 와인을 마시고 싶었지만 주머 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한 바로 향한다. 제시가 시선을 끌 동안 셀린은 와인잔을 훔 치고, 제시는 가게 주인에게 그녀와 완벽한 하루의 마무리를 위해 도와달라고 부탁한 다. 주인은 흔쾌히 와인 한 병을 건네며 제시에게 인생 최고의 밤을 보내기를 독려한다.
그들은 그의 말대로 인생 최고의 밤을 마무리하기 위해 레드 와인 한 병을 들고 한 공원으로 향한다. 그곳에 누워,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을 보낸다. 지나간 시간들을 아쉬워하며, 그럼에도 함께 비엔나를 누볐음에 감사하며. 이곳에서 제시는 셀린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단 하루의 만남이지만 자신이 얼마나 진심인지를.
내가 영화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람 없는 공원에 누워 밤과 와인이 주는 낭만에 취해 그의 고백을 들었다면, 나 역시도 사랑에 빠져버렸을 것이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비엔나 속 아름다운 장소에 걸맞는 장면들 덕에 더 흡입력있 게 관객을 끈다. 영화 속에 나오는 로맨틱한 장소들은 주인공의 마음에 용기를, 영화의 장면에는 생기를 불어준다.
시립공원(Stadtpark)으로 향했다. 강이 흐르고 다리가 흐르는 곳, 나는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였다. 공원의 초입엔 꽃집이 있었다. 꽃을 고르는 이들을 보자 문득 영화 속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 옆으로 펼쳐진 오스트리아 특유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뽑내는 건물들. 예술가의 동상, 공원 내에 잔잔히 울려퍼지는 한 길거리 소프라노의 아름다운 목소리, 도시락을 나누어 먹는 이들,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커다란 연못 위 의 오리. 그리고 연인들. 시립공원에는 수많은 셀린과 제시가 존재했다. 서로의 손을 붙잡고 나누는 대화들. 언어를 알아 들을 수는 없지만, 나는 그들이 사랑의 언어를 나눈다는 것만큼은 알았다. 아이와 산책하는 엄마, 친구들과 마시는 와인, 서로를 바 라보는 연인. 시립공원은 다양한 종류의 사랑으로 가득 찼다.
그날은 유난히 해가 아름답게 졌고, 하늘이 짙은 분홍색으로 물들자 사람들은 잠시 멈추어서 하늘을 바라봤다. 지나치게 아름답게 펼쳐지는 일상 속의 장면들이 되려 비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도나우 강변을 따라 이어진 산책로를 걸으며 생각했다. 흘러가 는 모든 풍경을 놓치지 말고 바라보는 시간을 꼭 가지자고. 그렇게 여행 중의 마음이 내게 스며든다면 일상도 여행처럼 아름다울 것이라고.
비엔나 시립공원 (Wiener Stadt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