촐암트슈테그 다리부터 도나우 운하까지
여행 작가 안시내가 찾아가는 <비포 선라이즈>

강을 따라 걷는 여행.

기차 안에서 만난 낯선 사람을 따라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비엔나에서 파리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이야기가 시작 된다. 프랑스 여자 셀린은 기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미국 남자 제시를 따라, 원래의 목적지가 아닌 비엔나에 내리게 되고, 둘은 아무 정보 없이 여행을 시작한다. 기차에서 내려 처음 도착한 여행지, 그곳이 바로 촐암트슈테그 다리(Zollamtssteg)다.

촐암트슈테그 다리에서 만난 연극 배우들과의 대화를 마친 후, 그들은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여행한다. 길거리 공연을 구경하고, 여기저기 붙어 있는 전시회 포스터를 보며 그림에 관해 대화하고, 발걸음을 멈춰 커피를 마시다 점을 보고, 우연히 걷던 강변에서 시인을 만나기도 한다. 발길 닿는 대로 떠나는 여행. 나 역시 가장 좋아하는 여행이다.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여행은 다분히 자유롭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곳을 여행한다. 힘들면 잠시 걸음을 멈추기도 한다. 여러 우연 속에서 여행은 더 풍부해진다. 그런 여행을 하기 가장 좋은 곳이 바로 비엔나가 아닐까. 비엔나는 목적지 없는 여행을 즐기기에 더없이 완벽한 도시기 때문이다. 역사와 예술 풍성한 문화와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 그곳에 흐르는 낭만적인 분위기까지.

‘링 도로(Ringstrasse)’라 불리는 원형 도로로 둘러싸인 비엔나의 구시가지에서는 지도도 필요 없다. 걸음마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득이다. 예술의 도시라는 걸맞게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자 콘서트장이다. 나 역시 비엔나의 여행을 촐암트슈테그 다리에서부터 시작했다. 제시와 셀린이 우연히 시인을 만난 도나우 운하를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었다.

친구를 기다리며 한참을 서있던 내게 한 연인이 다가왔다. 사진을 부탁하기 위해서다. 그들 역시 영화를 보고 왔을 것이다. 수십 번이나 영화를 본 나는, 영화 속 구도 그대로 그들을 담았다. 오렌지빛 조명 아래, 도나우 운하 위로 솟은 다리 위의 연인은 순식간에 이곳을 영화 속 장면으로 만들었다.

“제시와 셀린 같아!”라는 말에 활짝 웃는 그들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내 사진을 담아준다. 아마, 다음 일정이 있어 자리를 빨리 떠나야 했다면, 그들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로운 여행이 준 기쁨이다.

해가 저물고 그들이 걷던 도나우 운하를 걸어보기로 했다. 촐암트슈테그 다리 아래로 달리는 열차 소리를 음악 삼아 목적 없이 걷는다. 벽 곳곳에 그려진 그림들, 전시회 포스터, 강변을 달리는 사람, 따뜻한 모닥불 앞에서 글뤼바인을 마시는 사람들까지. 비엔나의 완벽한 겨울이 한눈에 담긴다.

영화 속에서 제시와 셀린은 나와 같은 곳을 걸으며 말한다. 기차에서 셀린이 내리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겠냐고. 셀린은 여전히 파리로 돌아가는 기차 안일 거라 답하고, 제시는 눈물 젖은 커피를 마셨을 거라 말한다. 우연한 만남과 용감한 선택은 이렇듯 그들의 인생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비엔나에서의 특별한 추억을 선물한다.

도나우 운하에서 그들과 우연히 만난 시인은 ‘밀크 셰이크라는 단어 하나로 시를 지어주는데, 염세주의 성향을 띤 제시와 감성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셀린은 전혀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함으로써 사랑은 더 증폭된다.

언젠가 사랑하는 이와 비엔나에 오게 된다면, 온종일 이곳을 걸을 것이다. 우연한 만남과 아름다운 비엔나의 풍경 속에서 더 큰 사랑이 피어나길 기대하면서.

그들이 시인에게 받은 시로 도나우 운하의 여행을 마친다.

촐암트슈테그 다리 (Zollamtssteg)

안시내의 촬영지 탐방

<비포 선라이즈>를 찾아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