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7년의 베토벤의 서거와 1828년의 슈베르트의 서거로 비엔나는 새로운 음악의 시대를 맞이합니다. 여기에 슈트라우스 가문이 굉장한 추진력을 불어넣습니다. 애칭 “샤니(Schani)”라고도 불리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는 무려 6살 때 첫 왈츠를 작곡했습니다. 그가1844년에 18세로 데뷔 공연을 성공시킨 쇤브룬 궁전 인근 “돔마이어 댄스장/ 키지노”는 오늘날 “카페 돔마이어(Café Dommayer)”로 손님을 맞이하고 있죠. 샤니는 장성하여서는 자신의 악단을 이끌며 아버지의 위치를 물려받아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1863년에는 모든 궁중 무도회를 섭렵하며 비엔나 무용 역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2017년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비엔나 왈츠의 특별한 점은 무엇일까요?
과거 비엔나 왈츠는 저속하다고 여겨져 비엔나 회의(Wiener Kongress)가 개최된 1815년까지 상류 계급에서는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춤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역사의 민속 무용에서 시작한 비엔나 왈츠는 서민 계급의 사랑을 받으며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부르주아 계층의 비중이 커지고 비엔나 살롱에서 예술에 대한 존중이 커지면서 궁중 무도회가 탄생하고 도시의 경계가 허물어진 새로운 비엔나가 활기찬 새 시대를 맞을 준비를 하게 됩니다. 바로 그륀더차이트(Gründerzeit), 창립 시대의 개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