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제2화: 새장 속에 갇힌 작은 새, 엘리자벳

    "자유, 당신은 나를 외면했어!” 아름답고 비극적인 황후의 이야기.

    Empress Elisabeth with a diadem in a strapless dress. Oil painting, anonymous, 1882
    media_content.tooltip.skipped

    비엔나 전역에서는 아름다운 흰 드레스를 입은 채로 보석 장식으로 가득한 긴 머리를 한 여인의 초상화를 어디서든 볼 수 있습니다. 비엔나의 아이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인물은 바로 엘리자벳 황후인데요. 이번 편에서는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 중에서 현대적인 관점으로는 아이돌 스타의 인기와 견줄 수 있을 정도로, 합스부르크 황실을 대표하는 가장 매력적인 황후로 회자되는 시씨의 초상을 만나봅니다.

    "Our Imperial Couple as happy newly-weds". Emperor Franz Joseph I and Empress Elisabeth in the Schönbrunn gardens. Print, 2nd half of the 19th century
    media_content.tooltip.skipped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는 1837년 독일 뮌헨의 공작 가문에서 태어납니다. 친가와 외가 모두 바이에른 왕가의 친척이었지만 왕위계승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자유로운 분위기 안에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엘리자벳은 시씨라는 애칭으로 불렸는데, 신중한 성격이었던 언니 헬레네와는 달리 말 타는 것을 좋아하는 자유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이런 그녀의 활달한 성격은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1853년 시씨의 큰이모였던 조피는 아들인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와 조카인 헬레네를 결혼시킬 계획으로 황실 별장이 있던 바트이슐에 시씨의 가족을 초대합니다. 이때 시씨는 그저 가족 행사라고 생각한 자리에 참석해 황제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황제는 미래의 신부를 만나러 간 자리에서 명랑했던 소녀 시씨와 사랑에 빠졌고, 언니 헬레네가 아닌 시씨에게 청혼하게 되면서 그녀는 하루아침에 오스트리아의 황후가 되는 영화와 같은 운명을 맞이합니다.

    "The family of Austria's Emperor." Xylography by Vinzenz Katzler, about 1880
    media_content.tooltip.skipped

    자유분방했던 소녀는 하루아침에 황실의 규율과 숨 막히는 시어머니 조피의 간섭아래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아도 양육권을 뺏긴 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녀는 황실의 규범과 법도로 대표되는 시어머니에게 맞서서 이후 양육권을 쟁취하기도 했으나, 남편의 외도, 아들인 황태자 루돌프의 죽음 등으로 비엔나를 떠나 외국을 여행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말년에는 결국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했다가, 무정부주의자 루체니에게 암살을 당하면서 드라마틱한 생애를 마치게 됩니다.

    Empress Elisabeth (1837-1898) in a light blue dress -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Gemäldegalerie /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media_content.tooltip.skipped

    이번에 소개해드릴 시씨의 초상화는 요제프 호라체크가 1858년에 그린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소장 작품으로, 21세의 시씨가 그려진 모습입니다. 시씨가 16살에 결혼한 후, 황실 생활 6년 차에 접어든 시점으로 이 시기에는 세 번째 아이이자 황태자가 될 루돌프를 낳았던 해입니다. 당시 시씨는 첫딸인 조피가 두살에 세상을 떠나자 큰 슬픔에 잠겨, 외부 출입을 줄이고, 궁 안에서 은둔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 시씨는 아름답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수에 젖은 분위기가 드러납니다. 당시 여전히 남편에 대한 신뢰가 있었던 시기임을 드러내듯 팔에는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초상화가 담긴 팔찌를 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씨의 단정한 올림머리장식 위로 티아라를 쓰고, V자형 레이스를 한 드레스, 진주목걸이를 착용한 모습은 시씨가 16살, 황실에 시집온 후 반복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이는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자신의 집무실에 걸어두고 매일 감상했다는 시씨의 긴 머리를 늘어트리고 화려한 장신구로 치장을 한 아름다운 용모를 담은 초상화와는 달리 왕실의 황후로서의 정제되고 기품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공식 초상화의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시씨는 자신이 나이 드는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서른두 살 이후에는 초상화를 그리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현재에는 그녀의 젊은 모습만이 그림 속에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에서 볼 수 있는 초상화 속 그녀는 늘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으로만 보입니다. 특히 미용과 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다양한 미용법으로 아름다움을 유지했습니다. 지금 시대라면 아마 소셜미디어의 화제의 인플루언서로서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르지요.

    Sisi Museum Vienna
    media_content.tooltip.skipped

    비엔나에서 시씨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합스부르크가의 정궁인 호프부르크 궁 안에는 시씨 박물관이 따로 있어, 시씨의 초상화, 드레스, 장신구 등 그녀가 직접 쓴 물건들 또한 만나볼 수 있는데요, 특히 시씨의 초상화로 가장 잘 알려진 긴 머리 가득 별 장식을 단 초상화의 실물을 보실 수 있습니다. 신혼 후 처음 생활한 것으로 알려진 쇤브룬 궁전에서도 시씨의 침실에서 그녀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궁 밖의 비엔나 카페들에서도 엄격하게 몸매를 관리한 시씨마저 빠져든 디저트들을 지금 맛볼 수 있습니다. 시씨는 호프부르크 왕궁의 근처에 있던 카페 데멜(Demel)의 제비꽃 아이스크림을 애정했고, 또 제비꽃 설탕절임으로 유명한 카페 게르스트너(Gerstner)도 자주 찾았다고 합니다.

    수도인 비엔나외에도 잘츠캄머구트의 휴양지 바트이슐은 시씨와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약혼한 장소이며, 여름마다 자주 찾을 정도로 애착을 갖은 곳인데요.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풍경 외에도 온천으로 유명한 곳이니, 도심을 벗어나 조용한 여행을 하고 싶은 분들께도 이 작은 마을도 방문해보시길 권유해 드립니다.

    Empress Elisabeth Monument in the Volksgarten, Vienna
    media_content.tooltip.skipped

    시씨의 일생은 뮤지컬 엘리자벳으로도 만들어져 현재 대중들에게 널리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생에 먼저 아들인 황태자 루돌프의 자살, 그리고 많은 이들을 먼저 떠나보낸 비운의 삶을 죽음이라는 친구가 늘 그녀의 곁에 맴돈 것으로 묘사한 뮤지컬은 올해로 한국어 초연 10주년을 맞아 기념 공연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뮤지컬에서는 귓가를 맴도는 뮤지컬 넘버와 함께 시씨의 장대한 삶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시씨의 초상화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빈 미술사 박물관 특별전에서 전시될 예정이며, 시씨의 초상화 뿐만 아니라,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초상화와 제복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조선의 첫 수교 당시 고종이 선물한 조선 왕자의 투구와 갑옷 등 오스트리아의 근대사를 대표하는 유물들을 서울에서 볼 수 있는 기회 또한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글: 신미리 (한국경제신문 사업국 큐레이터)

    도슨트 이야기 더 들어보기

    • media_content.tooltip.skipped

      제1화: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초상

      스페인 최고의 초상화가 벨라스케스가 그린 어린 공주 마르가리타 테레사의 이야기.
      더 보기
    • media_content.tooltip.skipped

      제3화: 전도유망한 청년 클림트가 남긴 벽화

      오스트리아 미술사상 최고의 거장이 된 화가의 이야기.
      더 보기
    •                         Archduchess Marie Antoinette (1755-1793), Queen of France -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Gemäldegalerie /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media_content.tooltip.skipped

      제4화: 합스부르크에서 피어나, 베르사유의 장미가 된 마리 앙투아네트

      모차르트에게서 청혼 받은 아름다운 소녀의 이야기.
      더 보기
    media_content.tooltip.skipp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