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예술이 꽃피우던 시기, 그 절정을 피워낸 단 한명의 예술가를 꼽으라면 아마 구스타브 클림트가 아닐까요? 클림트는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 1862년 비엔나 교외의 보헤미아 이민자 가정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클림트의 아버지, 에른스트는 보헤미아에서 숙련한 금세공업으로 가정을 부양했습니다. 에른스트의 일곱 명의 아이 중 세 아들 구스타프, 에른스트, 게오르그는 아버지의 이런 손재주를 물려받았고, 황실이 세운 장식공예학교에서 공부하였습니다. 클림트가 자신의 작품에 금을 활용하면서 ‘황금의 화가’로 불리게 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겠죠.
클림트는 넉넉하지 못한 가정 탓에 이른 나이에 생계를 찾아 자립하여만 했는데요. 결국 그는 1879년 동생 에른스트, 프란츠 마치와 함께 예술가 컴퍼니라는 회사를 세우게됩니다. 여전히 장식공예학교 학생이던 이들은, 지도교수인 라우프 베르거의 일감을 어느 정도 나눠서 그를 도우며 학생으로서 많은 큰 프로젝트들에 참여하게 됩니다. 당시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비엔나를 재정비하는 계획을 세우던 시기로, 비엔나의 오래된 성벽을 허물고 새로운 도로와 그 주변부로 국회의사당, 비엔나 대학,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자연사박물관, 시청, 부르크너 극장, 비엔나 국립 오페라극장 등 여러 건축물들이 건립되고 있었습니다. 이런 기회의 시대에 클림트가 세운 예술가 컴퍼니는 작업적으로 호황을 맞았고, 결국 지금 비엔나에서 일부 대부분의 중요한 건물에 클림트의 흔적이 있었다는 사실로 연결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