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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화유산 에겐베르크 궁전의 7대 불가사의

    그라츠 중앙역에서 트램을 타고 7분 만에 갈 수 있는 곳. 한적한 주택가를 거닐다 보면 넓은 정원 사이로 에겐베르크 궁전이 위용을 뽑내며 모습을 드러냅니다. 우주를 표현한 건축물과 멀리 동아시아에서 건너온 미술품, 행성의 방, 정원을 활보하는 공작새들에 이르기까지, 신비로 가득한 에겐베르크 궁전을 탐험해볼까요.

    에겐베르크 성을 소개합니다

    비엔나에서 남쪽으로 200㎞,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 그라츠에 위치한 에겐베르크 궁전(Schloss Eggenberg)은 신성로마제국 페르디난트 2세에게 충성을 다한 한스 울리히 폰 에겐베르크 대공의 주도 하에 1625~1635년까지 지어진 궁전입니다. 건물은 중앙 정원을 口자 형태로 둘러싸고 있으며, 미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은 3층(오스트리아에서는 2층)만 일반에 공개됩니다.

    에겐베르크 궁전에는 알테 갤러리, 코인 콜렉션, 고고학 박물관, 푸릇푸릇한 행성정원, 시민들의 휴식처인 궁전 내 공원 (Schlosspark) 등 볼거리가 풍부합니다. 짧게는 3시간, 길게는 반나절 정도 충분히 여유를 두고 둘러보기를 권합니다.

    에겐베르크 궁전은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현재는 슈타이어마르크 주 주립박물관인 유니버셜 요아네움(Universal Joanneum)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에겐베르크 궁전의 7대 불가사의

    Palace Eggenberg / Schloss Egg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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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완벽한 유토피아 - 우주를 담은 궁전

    한스 울리히 폰 에겐베르크(Hans Ulrich von Eggenberg, 1568-1634) 대공은 1625년 궁정고문으로 등용되면서 성을 축조하기 위해 밀라노 근교에서 활동하던 건축가 조반니 피에트로 드 포미스(Giovanni Pietro de Pomis)를 불러들입니다. 자신이 거처하는 궁전에 만물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유토피아를 실현하기 위해서였지요. 우주의 모든 지식과 요소들, 우주의 영험한 힘을 담은 상징적인 세계 말입니다.

    정방형에 가까운 궁전은 주위에 가로막는 것이 없기 때문에 햇빛이 온종일 궁전 전체를 비추는데, 네 곳의 파사드가 한동안 빛을 머금습니다. 중앙에 위치한 첨탑에는 마치 거대한 해시계처럼 그림자가 드리워 계절과 시간을 알려주지요. 방들 또한 네 개 시간대(아침, 정오, 저녁, 한밤중)에 맞추어 설계되었습니다. 궁전의 네 귀퉁이에 솟은 첨탑은 에겐베르크 대공이 종종 출장으로 머물던 스페인 궁정 건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동서남북과 사계절, 물질의 4대 구성요소(불, 물, 바람, 토양)를 상징하지요.

    Eggenberg Palace in Graz / Schloss Egg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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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에겐베르크 달력

    궁전 전체가 달력의 주기를 철저하게 반영해 설계되었습니다.

    • 외창의 수 : 365 (일년 365일)
    • 문의 갯수 : 12 (1년 12개월)
    • 각 층의 방 : 31 (한달 31일)
    • 각 층의 방에서 특히 중요한 '행성의 방' '예배당' '궁전교회(과거 극장)'를 제외한 수 : 28 / 29/ 30 (31일 외의 한달 일수 주기)
    • 응접실 수 : 24 (하루 24시간)
    • 응접실 창문 수 : 52 (1년 52주)
    • 응접실 창문 + 행성의 방 창문 : 60 (60분, 60초)
    • 2층 가족실의 문: 52 (1년 52주)

    당시 귀족들은 웅장한 건축물을 통해 지위와 정당성을 드러내었고 대외적으로도 인정받고자 했습니다. 에겐베르크 대공은 고귀한 가문 출신은 아니었지만, 빠르게 출세해 권력의 무대에서 활약한 인물이었습니다. 우주와 달력을 완벽하게 구현해 스스로 황제의 오른팔이 되기에 합당한 교양과 품위, 재력을 겸비했음을 피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지요.

    Planetensaal Schloss Eggenberg Gr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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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우주의 신비를 이야기하는 '행성의 방'

    궁전주가 귀빈을 알현하는 장소이자 때로는 황제가 머물기도 한 3층에는 24개의 화려한 방(Prunkräume)들이 口자 형태로 배치되었으며, 모든 방을 투어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17~18세기의 가구가 아무 장치 없이 놓여있기 때문에 관람객들은 출발 전에, “피곤해도 주변에 있는 의자에 절대로 앉지 마세요!” 하고 주의를 받는답니다).

    현재 관람 가능한 방은 에겐베르크 대공의 손자 요한 자이프리트 폰 에겐베르크(Johann Seyfried von Eggenberg, 1644-1713)가 1666년 이후 만들게 한 곳으로, 메인은 대귀빈실인 '행성의 방(Planetensaal)'입니다. 에겐베르크 가문을 찾는 손님이면 반드시 거치는 이곳의 천장화와 벽화는 행성과 점성술, 숫자들을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궁정화가 한스 아담 바이센킬혀는 에겐베르크 가문의 사람들을 모델로 신화를 창조한 것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공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에겐베르크 가문이야 말로 평화와 조화를 추구했음을 역설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당시에 알려진 일곱 개의 행성(태양, 달, 화성, 수성, 목성, 금성, 토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천장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 행성들은 일주일 동안 연금술에 사용된 일곱 가지 광물과 에겐베르크 가문의 위대한 일곱 영주를 동시에 상징합니다. 벽에는 황도 12궁에 관한 신화가 유화로 채워져 있는데, 요한 자이프리트 자신은 완전무결한 지배자임을 의미하는 주피터(목성)로 등장합니다.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갈릴레이가 1633년에 종신형을 선고받은 이후 약 10년 동안 천체도에는 태양도 행성의 일부로 포함되어 있다.

    Eggenberg Palace in Graz / Schloss Egg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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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뜻밖의 기회, 결혼 피로연

    궁전은 1635년에 완공되었으나, 한스 울리히 폰 에겐베르크 대공은 완성된 궁전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로부터 40년 후 손자인 요한 자이프리트 대공의 시대에 이르러 유럽 전역에 궁전을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1673년 황제 레오폴트 1세의 두 번째 결혼식이 그라츠에서 열리게 된 것이지요. 젊은 주인은 호스트로서 신부인 티롤의 대공녀 클라우디아 펠리치타스와 어머니 안나 드 메디치, 그 측근들을 에겐베르크 궁전에서 맞이했습니다. 350명의 국빈과 말 700마리를 거두기 위해 황급히 개조공사를 했다고 합니다. 화려한 연회와 충실한 접객으로 피로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에겐베르크 궁전은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모든 유럽인의 주목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Schloss Eggenberg Porzellankabinett Japan / Schloss Egg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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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인도 콘셉트를 오스트리아에?

    16세기 유럽 왕후귀족들은 동아시아 수공예품의 이국적인 아름다움에 심취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도자기와 비단 그림, 일본의 칠기 공예품이 엄청난 인기몰이를 했다지요. 에겐베르크 궁전의 주인 역시 예외는 아니었답니다. 2층의 호화로운 방들 중에는 벽에 일본의 고이마리(古伊万里) 도자기를 박아넣은 '도자기 방', 벽지 한 곳을 일본의 병풍화로 장식한 '일본 방', 그리고 중국의 도자기를 전시한 '중국 방'이 있어, 동서양이 융합한 독특한 인테리어를 선보입니다.

    이 세 곳을 통일해 '인도의 방(Indianische Kabinette)'이라 불렀다고 하는데요, 일본과 중국이 인도에 속하지도 않았는데 어째서 인도의 방이라고 했을까요? 이 많은 동양 미술품이 각국의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럽으로 유통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미술품이 정확히 어느 나라에서 생산된 것인지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거든요. 인도양 건너편에서 넘어오는 물건은 모두 '인도에서 온 것'으로 인식했던 것이죠.

    Schloss Eggenberg Grotte bei Nacht / Schloss Egg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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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신기한 '넵투누스의 분수'

    고딕 양식으로 예배당을 지은 궁전 중앙 탑의 지하에는 벽면에 조개껍질을 박아넣은 동굴이 있습니다. 중앙에서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신 넵투누스가 머리 위에 이는 조개처럼 생긴 볼에서 물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이는 예배당이 있는 지상의 성스러운 세계가 이곳에서 끝나고, 아래로는 물이 흐르는 암흑의 세계가 이어짐을 뜻합니다.

    동굴은 여성적인 물과 흙, 하늘을 향해 솟은 탑은 남성적인 불과 바람을 표현합니다. 빛과 어둠, 천계와 명계(저승), 남성과 여성 등, 모든 상반된 존재를 결합함으로써 이상적인 천계의 진리인 ‘제5원소(the fifth element)’를 탐구한다는 의미죠. 궁전의 다섯 번째 탑인 이 중앙탑과 동굴 샘물은 실로 우주의 신비로움 그 자체이며, 바로크 시대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상징들입니다.

    밝은 외부 경관과 대조적으로 어두침침하지만, 이 공간이야 말로 에겐베르크 궁전의 핵을 이루는 곳으로, 신비롭고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곳을 방문한다면 놓쳐서는 안 되는 명소이지요!

    Candlelight in the Planetary Room / Schloss Egg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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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바로크 시대의 명랑함(혹은 어둠)을 체감하는 캔들 투어

    에겐베르크 궁전의 화려한 응접실은 1770~1945년까지 아무도 살지 않았기에 거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었습니다. 1948년에 박물관으로 일반에 공개되었을 때에도 현대적인 설비는 도입되지 않아 샹들리에에도 전기가 통하지 않았지요. 21세기인 지금도 몇백 개에 이르는 양초의 불빛만이 어둠을 수놓을 뿐이랍니다.

    에겐베르크 궁전에서는 해마다 기간 한정으로 캔들 투어가 열립니다. 바로크 시대를 풍미한 에겐베르크 가문을 비추던 불빛을 받으며 내부를 견학할 기회입니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찾아보지 못할 환상적인 세계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해마다 5월~10월 사이에 개최되는데, 5인 이상 단체예약이 필수입니다. 매우 인기가 높아 2021년은 이미 예약이 마감되었습니다. (예약 취소가 발생한 경우 하루, 이틀 전에 새로운 예약자를 발표합니다.) 2022년 일정은 에겐베르크 성의 뉴스레터 또는 페이스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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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궁전은 바로크 양식, 예배당은 고딕 양식

    에겐베르크 대공은 1635년에 궁전의 건축을 지시하면서 증조부인 발타자르 에겐베르거(Balthasar Eggenberger, 약 1425-1493)가 생전에 기거하던 궁전의 일부를 부수지 않고 남겨두었습니다. 중앙의 탑을 중심으로 건물동 네 곳을 나중에 지은 것이죠. 이 중앙탑에는1470년에 완성한 고딕 양식의 마리아예배당이 있습니다. 가족이 기도하기 위한 개인 예배당으로, 정사각의 바닥에서 천장으로 팔각형을 이루며 기하학적으로 뻗은 아치 장식이 아름다운 별모양을 만들고 있지요.

    성모마리아를 중심으로 네 명의 순교자와 12사도가 그려진 제단화도 1470년 당시에 그려진 것입니다.

    Castle Eggenberg in Graz in winter / Schloss Egg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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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겨울에는 동면합니다

    에겐베르크 궁전 내부 관람 시즌은 4월(혹은 3월 말)~10월까지로, 겨울에는 궁전이 폐쇄됩니다. 난방이나 전등이 갖추어지지 않은 곳이거든요. 역사적으로 많은 우연을 거쳐 보존되어온 에겐베르크 궁전과 그곳의 생활 소품, 미술품을 앞으로도 오래 보호‧유지하기 위해서는 현대 설비를 도입하지 않고 '동면'하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고 간단하답니다.

     <2024년 개관 시기>

    • 2024년 3월 23일~10월 31일

    ※정원은 정상적으로 개방합니다.

    styriarte at Eggenberg Palace, Gr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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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세 번 옷을 갈아입은 정원

    에겐베르크 궁전 안의 넓은 정원은 세 번의 커다란 변화를 거쳐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678년 요한 자이프리트 대공은 정원을 자신이 흠모한 이탈리아 양식으로 꾸몄습니다. 높은 울타리를 만들어 여러 공간으로 나누었고 진귀한 식물을 심거나 꿩의 우리, 온실, 거북이가 기거하는 연못, 가든 파티를 위한 부엌 등으로 공간을 채웠습니다.

    1754년 에겐베르크 가문의 수명이 끊긴 후에 주인이 된 요한 레오폴드 헤르베르슈타인 백작은 정원을 바로크 양식이 들어간 프랑스식으로 개축했고 지금도 남아있는 로코코양식의 동쪽 방과 미로, 온실, 과수원 등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열두 곳의 출입구를 갖춘 정원의 외벽은 이 시대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1765년 7월, 황제 프란츠 1세와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는 셋째 아들인 레오폴드의 결혼식을 치르기 위해 인스부르크로 이동하던 도중 새로운 정원의 시찰을 겸해 에겐베르크 궁전에 일주일 동안 머물렀습니다. 여름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둘은 몇 번이나 정원에서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후 7월 9일에 일행은 인스부르크로 향했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프란츠 1세는 8월 18일에 인스부르크에서 급사합니다. 에겐베르크 궁전에서 보낸 한때는 친밀했던 황제 부부가 즐긴 마지막 나날이었을지도 모릅니다.

    19세기로 접어들면서 자연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변화했고 이를 반영해 조성된 형태가 현재의 영국식 정원입니다. 그라츠 중심부와 가깝다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녹음이 짙고 고즈넉한 정원은 관광객은 물론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한스 울리히 폰 에겐베르크 공작에서 시작된 일가의 번영은 한 세기도 채 채우지 못하고 막을 내렸습니다. 1700년대 초반 에겐베르크 가문은 빠른 신분상승과 맞먹을 만큼 급격하게 권력을 잃어갔지요. 3대에 걸쳐 자손이 요절했고 1717년에는 대까지 끊기어 급물살을 타고 가문이 몰락했습니다.

    궁전은 18세기 후반부터 사돈인 헤르베르슈타인 가문에서 관리했지만, 그 후 약 150년 동안 1년에 여러 주만 제한된 방을 사용하는 쓸쓸한 시대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어 궁전은 부활했고 우리는 거의 250년 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내부 장식을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에겐베르크 궁전은 너무도 짧은 기간 동안 유성처럼 빛나다 사라진 귀족의 긍지와 지식의 결정체였습니다. 흘러온 역사는 결코 좋은 일만 있었노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시 불어넣은 숨결로 세상에 유일무이한 궁전으로 되살아났고 찾아주는 이들을 매료시키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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